예전부터 이러한 책들을 읽으면서 도대체 깨어있기라는 게 뭔가? 잠에서 깨어있는 것이 아닌

이러한 깨어있기가 뭐길래 자꾸 '깨어 있으라', '지금 깨어 있기' 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지

그 전에는 그냥 불교철학에서 이러한게 있구나라고만 단순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 이러저러한 책들을 뒤적이면서 때론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번 훑듯이 읽어보면서

수시로 문득 깨어있기라는 것이 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얼마전에 도서상품권으로 구매한 법륜스님의 '지금 여기 깨어있기' 를 읽고 있다.

불교방송에서도 그렇고 언론에도 가끔 나오시고 어느정도 인지도 있는 법륜스님이라 

망설임 없이 저 책을 구매해서 쭉~ 읽었다.

법륜스님의 꽤 많은 저서들이 있다. 미국에서나 해외에서도 강의를 많이 하신다고 한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인생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 문제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해탈, 열반이라고 합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고 맑으면 맑은 대로 좋고

추우면 추운 대로 좋고 또 더우면 더운 대로 좋아요.'

그래 정말로 맞는 말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 거림 낌 없이 아무런 불만 없이 걱정 없이 자유로운 게 해탈이다.

책 내용들은 강의 했던 내용과 삶에 묻어나는 실제 겪었던 내용들이 들어있다.

충분히 쉽게 읽을수 있고, 이러한 책류의 처음 접하신 분이라면 처음 읽어도 좋을 책이라고 본다.

책 속의 중간글을 잠깐 살펴보자면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삶에 유용하게 만들어라'

'일어나는 모든 일은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닙니다.

좋은 일이라고 했던게 내일 가면 나쁜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라고 했던 게 내일 가면

좋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넘어진 것은 나쁜 일이라고 하지만 넘어졌을 때 돈을 주웠다면

잘 넘어진 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의 일일 뿐이에요. 그것을 어떻게 자기의 삶에 유용하도록

만들어내느냐는 오직 본인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일체유심조다.

이러한 것을 알고 있더라도 지식을 알고 있더라도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깨달으려면, 해탈하려면, 성불하려면, 열반에 들려면, 견성하려면 직접 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ㅎ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건, 미얀마 등으로 수련을 가든

수시로 실제 생활에서 항상 깨어있기를 하든지 간에 직접 하지 않고서든 모른다.

그래서 우리 일반인들이 하기에는 실제생활에서 적용해서 항상 깨어있는 방법의 수련으로

깨닫는 방법밖에 없다.

지금, 여기, 왜~라는 의문을 항상 가지고 또는 지금, 존재, 나~라는 존재감을 가지고 생활을 하자~! 

그게 깨어있음이다. 솔직히 그 존재감이라는 것도 어떠한 것인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미래 생각들 다 버리고 지금 현재 집중하면서 지금, 존재, 나라는 존재를 알아차리다 보면

언젠가는 '이 뭣고?'라고 하는 날이 오겠지...

 

참고 : '이 뭣고?'라는 말이 이런 저런 책에서 많이 나온다. 경상도 사람이라면 무슨 뜻인지 바로 알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걸... 경상도 사투리로 이 머꼬?라는 것인데, 스님들이 수련 중에 몸에서 뭔가 튀어나오는데

이것이 뭔지 깨달으신 스님이(경상도분) 이 머꼬?(이게 도대체 뭐야?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머꼬? 이머꼬? 가 자주 쓰이지 않나 싶다. 화두는 아니라고 본다. 뭐 내 생각일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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